* 대본 출처 : 르상크 vol.192
* 아마추어 번역. 전체가 칸사이 사투리로 되어있지만 그 부분은 생략하고 적당히 작업했습니다…
라쿠고 뮤지컬
ANOTHER WORLD
작·연출 타니 마사즈미
주된 배역
아이즈키 히카루 – 가난뱅이 신(명도관광안내소의 안내역)
나토리 레이 – 염라대왕(염라청의 우두머리. 극락행, 지옥행을 나눈다)
나나미 히로키 – 키로쿠(콘다야의 심부름꾼)
레이 마코토 – 토쿠사부로(에도의 쌀 도매상 코토부키야의 아들)
키사키 아이리 – 오스미(오사카의 화과자점 쇼게츠도의 딸)
쿠레나이 유즈루 – 야스지로(오사카의 환전상 콘다야의 아들)
아리사 히토미 – 하츠네(메이도·카페의 점원)
세오 유리아 –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텐쥬 미츠키 – 모쿠베에(삼도천의 뱃사공)
오토하 미노리 – 엔야(염라대왕의 첩)
미키 치구사 - 킨베에(콘다야의 주인. 야스지로의 아버지)
마리 유즈미 – 오토세(야스지로의 어머니)
제 0장
첫 무대생의 인사말
정각이 되어, 조장의 인사(녹음).
조장 :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성조 조장인 마리 유즈미라고 합니다. 개연에 앞서 이 성조공연에서 첫 무대를 도전하는, 104기생·사십명을 선보이겠습니다.
(생략)
제 1장
벚꽃 몽현
화려한 서곡으로 막이 오르고, 딱따기 소리와 함께 조명이 들어와, 무대, 아름답고 예스러운 종이에 사앵나무로 구성된 장치를 배경으로, 벚꽃가지를 든 벚꽃의 미동과, 벚꽃의 미녀가 늘어서 화사하게 춤을 춘다.
벚꽃의 미동S : 벚꽃 지는 꽃이여 너는 덧없는 운명을 한탄하는 것이냐 짧은 목숨을 원망하는 것이냐
생명은 아름다움 살아있다는 것은 기쁨 선명한 삶의 증표로 춤을 추어라
바람에 이끌려 흩어지는 꽃이여 봄의 자취를 언제까지라도
바람에 이끌려 흩어지는 꽃이여 봄의 자취를 언제까지라도
전원 일단 퇴장하여, 벚꽃의 미동 S와 벚꽃의 미녀 S의 듀엣이 된다. 또 한명의 벚꽃의 미동S와 남자들의 춤으로 바뀐다. 또다시 전원이 등장하여 다 같이 춤을 춘다. (두개의 부채)
전원 : 벚꽃의 미동S : 벚꽃 지는 꽃이여 너는 덧없는 운명을 한탄하는 것이냐 짧은 목숨을 원망하는 것이냐
생명은 아름다움 살아있다는 것은 기쁨 선명한 삶의 증표로 춤을 추어라
바람에 이끌려 흩어지는 꽃이여 봄의 자취를 언제까지라도
바람에 이끌려 흩어지는 꽃이여 봄의 자취를 언제까지라도
페이드아웃(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짐)되며, 다음 장면으로 계속된다.
제 2장
유명경(저승과 이승의 경계)의 화원
무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에 있는 유명경의 화원. 오색의 구름이 흐르고,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연꽃의 정령이 물과 장난치듯 춤을 추기 시작한다.
[광명진언]
코러스 : 옴…아모가…(아…) 옴…아모가…(아…)
코러스(솔로) :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
코러스 : 옴…아모가…(아…) 옴…아모가…(아…) 옴…아모가…(아…)
꿈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음악과 함께, 하얀 수의에 두건(스미보우시) 차림의 주인공·야스지로가 연꽃모양의 배를 타고 다다른다.
야스지로 :(눈을 뜨며) 아아…잘 잤다. 극락이 따로 없네. …어라, 여긴 어디지? 뭔지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곳이네. 오색의 구름이 길게 뻗어있고, 연꽃이 하늘에 떠있다니 운치있네… 아니, 아냐! 연꽃이 떠있어야 할 곳은 물 위고, 하늘에 떠있다니 마치 극락같잖아……맞아! 난 죽었었어!
배경음악, 저 세상의 분위기를 띈다.
야스지로 : 그렇다면 여기는 저승!(둘러보며)처음 왔지만 너무 아름다운 경치야… 죽는 건 죽을 만큼 무서웠지만 이렇게 죽어보니 나쁘지 않네. 아니, 분명 이쪽이 더 좋아. 벌써 며칠째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는데도 배도 고프지 않고 목도 마르지 않아. 사바세계(속세)에서는 그렇게 고민했던 일들도, 깨끗하게 까먹고, 뭘 고민하고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야. 막상 죽어보니 저승도 생각보다 좋은 곳이구나~
독경소리와 함께, “야스지로”라며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야스지로 : 어라, 누군가 날 부르고 있는데
하늘을 찢는 듯한 음악으로 3호 무대장치가 올라오자, 야스지로의 부친·킨베에와 모친·오토세, 그리고 승려인 보쿠넨이 3호 무대장치 속에서 등장한다.
킨베에 : 시끄럽다, 울지 마라.
야스지로 : (3호 무대장치 위에서, 하계를 내려다보며) 저건 아버지와 어머니……이 세계에서 현세가 보이는건가? 이거 재밌네! 그건 그렇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상복 따위를 입으시고 뭐하시는거지? 불경을 외고 있는 것은 일심사의 보쿠넨 스님……
보쿠넨 : 분향을……
야스지로 : 장례식인가봐. 누구의 장례식이지? 관 속에 들어있는 건…… 나다! 내 장례식이었어! 그렇지만 오사카의 환전상 [콘다야]의 외동아들의 장례식 치고는, 뭐야, 쩨쩨한 장례식이네.
야스지로에게는 하계가 보이고 있으나, 하계의 인간은 야스지로의 유골을 향해 말을 건다.
킨베에 : 멍청한 놈! 일족의 수치다! 상사병으로 죽다니 쪽팔려서 남들에게 말도 못하겠구나! 장례를 치러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라!
오토세 : (울면서)야스지로야, 야스지로- 이렇게 죽으면 어떡하니!
야스지로 : 엄마, 왜 죽었냐고 해도 하늘의 부르심은 어쩔수가…
오토세 : 부모보다 먼저 죽다니, 이런 불효막심한 녀석아(운다)
야스지로 : 미안해요… 너무 울지 마세요……부모님 곁을 먼저 떠나는 불효, 이것만큼은 정말 죄송해요. 저도 죽고 싶어서 죽은 건 아니니 용서해주세요……어라, 아버지가 천 주머니(즈다부쿠로) 안에 뭔가를 넣고 있네. 어디어디… 아지가와의 뱃사공 모쿠베에 50량. 저건 빚을 떼어먹고 죽은 놈의 증서! 그걸 천 주머니 안에 넣어서, 뭘 하시려는거에요 아버지!
킨베에 : 이 녀석들은, 저승의 어딘가에 분명 있을거야. 네놈도 대금업자의 아들내미라면, 뭐가 어떻게 되던지 찾아내서, 꾸어준 돈을 되찾아 오거라!
킨베에가 천 주머니를 관 속에 던져 넣자, 야스지로의 머리 위에서 천 주머니가 내려온다.
야스지로 : 아버지는 뻔뻔하시기도 하지! 아무리 대금업자라고는 해도, 죽은 사람한테서 빚을 받아오라니 너무하잖아.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죽고 나면 부처님, 그렇잖아요 아버지!
킨베에 : 멍청하긴! 지옥에서도 돈이 최고야! 죽었다고 해서 빚을 떼어 먹히고 가만히 있을쏘냐!
야스지로 : ……난 이제 마음 잡았어. 현세에 미련은 없어. 부탁받았다고 해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나는 저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거야!
야스지로 : 누구나 한번은 지나가는 길 그렇지만 모르는 이 세계
ANOTHER WORLD, ANOTHER WORLD
마음의 눈으로 보는 세계
두려움과 동경 꿈과 희망이 뒤섞여
첫 사랑 하던 시절의 순진한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울렁울렁 싱숭생숭
둥실둥실 두근두근
나는 저 세상을 사랑하고 있어
야스지로, 천 주머니를 손에 들고 연꽃의 배에서 내린다.
야스지로 : 사랑은 묘약 살아갈 희망을 되살리고
부드러운 남자도 강한 무사처럼
새로 태어난 야스지로라네
울렁울렁 싱숭생숭
둥실둥실 두근두근
나는 저 세상을 사랑하고 있어
노래하는 사이에, 3호 무대장치가 내려가, 원래의 화원으로 돌아가있다.
키로쿠 : 도련님이시잖아요!
[콘다야]의 심부름꾼·키로쿠가 기뻐하며 등장.
야스지로 : 키로쿠, 심부름꾼인 키로쿠가 아니냐! 너도 여기에 와 있었니!
키로쿠 : 와있었냐…니 그런말을 하실 때가 아니에요. 도련님 때문에 이렇게 되버렸잖아요!
야스지로 : 나 때문이라고? 무슨 말이야?
키로쿠 : 도련님, 코우즈의 신사에서 화과자점 쇼게츠도의 아씨를 보고 첫눈에 반하셨잖아요
야스지로 :(화들짝 놀라며) 맞아…
키로쿠 : 그때는 어디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아씨였지만, 도련님이 상사병으로 몹시 근심하여 내일이라도 당장 죽을 듯이 앓으셔가지고
야스지로 : 그만둬! 부끄러우니까, 진짜
키로쿠 : 걱정하신 마님이 저한테 그 아씨를 찾아달라고 부탁하셨거든요. 실마리는 아씨가 남기신 스토쿠인의 시조 앞 구절. ‘빠른 물살 바위에 가로막힌 폭포의 물줄기’
야스지로 : 맞아. 뒷 구절은(큰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한다) ‘갈라진들 마지막에는 다시금 만나리’……(기쁜 듯) 오늘은 이만 인사드리겠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겠습니다…아씨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셨던 거야!
키로쿠 : 주책 떨지 마시구요! 그 실마리 하나만으로 오사카 전체를 찾아다녔다구요.
야스지로 : 죄송…
키로쿠 : (큰 소리로 소리친다) ‘빠른 물살 바위에 가로막힌 폭포의 물줄기’! (더욱 큰 소리로) ‘빠른 물살 바위에 가로막힌 폭포의 물줄기’!……겨우겨우 찾아냈을 땐 아씨도 상사병으로 깨꼬닥 하신 다음이었구요. 그걸 보고하러 돌아가 보니, 이번에는 도련님까지 깨꼬닥……
야스지로 : 내 얘긴 됐어. 어째서 네가 여기에 와있는지 물어보는 거야
키로쿠 : 도련님이 깨꼬닥 해버리신 게 제 탓이라고 전해지는 바람에 제가 짤렸다구요. 화풀이도 정도가 있지. 바보 같아서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5일 전쯤에 뜬 고등어 회를 안주삼아 홧김에 술 한 잔 했더니, 진짜 어이없게도 그 고등어 때문에 배탈이 나서, 깨꼬닥 해버렸죠.
야스지로 : 5일 전의 고등어라니 배탈나는 게 당연하잖아~~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시시한 죽음이네.
키로쿠 : 상사병으로 죽은 사람한테 듣고 싶지 않아요!
야스지로 : 자자, 그렇게 화내지 마. 여행은 벗이 있어야 좋다잖아. 사이좋게 지내자. 어쨌든 명도는 처음 오는 곳이니까. 네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해. 너는 여기에 몇 번째 오는 거야?
키로쿠 : 도련님은 정말 국보급 멍청이네요. 처음인 게 당연하잖아요!
야스지로 : 자자, 자자자… 그건 그렇고 너 기모노 입는 법이 틀렸어. 죽은 사람은 기모노의 앞섶을 왼쪽 앞으로 해야지.
키로쿠 : 언젯적 얘기를 하시는 거에요. 도련님처럼 고색창연한 모습은, 이 세계에서 유행하지 않는다구요.
야스지로 : 그래애? 그치만 그런걸 알고 있다니 너 역시 처음이 아니구나.
키로쿠 : 처음이라니까요!
야스지로 : 응? 몇 번째야? 알려줘~
야스지로와 키로쿠, 주고받는 만담을 하며 분위기 좋게 퇴장.
하나미치에서 에도의 쌀 도매상 [코토부키야]의 도련님, 토쿠사부로가 노래하며 등장한다.
토쿠사부로 : 유흥 삼매경, 방탕 삼매경
이 세상의 놀이에는 이제 질렸구나
돈도 아낌없이 써보았고
마음을 들뜨게 할 놀이가 하고 싶어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없는 소원이라면
차라리 저 세상에서 소동을 벌여볼까
망자들을 모아서 신분도 지위도 없는 연회를 벌이자
염라대왕님이라고 두려울 쏘냐
북치기 잇파치가, 타츠미게이샤(에도 후카가와 유곽의 게이샤를 이르는 말)인 소메지, 츠타키치, 키쿠얏꼬를 선두로 하여 쫓아 나온다.
잇파치 : 기다려주세요, 나리
소메지 : 저희들은 남자들하고 달라서 옷자락이 끌린다구요. 그렇게 빨리 걸을 수는 없어요.
츠타키치 : 게다가, 모처럼 저 세상에 온 거잖아요. 천천히 관광하면서 한껏 멋 부려 보자구요.
토쿠사부로 : 이제 금방 삼도천이 나올 거야. 삼도천을 건너고 나서부터가 진정한 명도 여행이다. 이런 곳에서 꾸물댈 수는 없어.
잇파치 : 나리, 나리가 ‘어이, 잇파치. 이 세상의 놀이에는 이제 질렸다. 한 번 명도에라도 가서 놀아보지 않겠느냐’라고 하셔서 따라왔다구요.
키쿠얏꼬 : 저도 마찬가지에요. 아껴주시는 나리를 끝까지 따르는 것이 타츠미 게이샤의 마음가짐인걸요.
소메지 : 복어의 간은 맛있다는 걸 알아도 탈이 나서 죽는 건 무서우니까 평소엔 먹지 않았지만, 나리를 위하는 마음에 모두가 죽을 각오로 복어의 간을 먹어서, 훌륭하게 명도로 오게됐잖아요. 천천히 가자구요.
일동 : 나리~~
토쿠사부로 : 에도 토박이는 성미가 급하다구. 자, 가자!
일동 : (웃으며 대답) 네에~!
일동 : 복어의 독을 다 같이 먹고 찾아 왔어요 저 세상이라는 곳에
오늘 날씨도 좋고 명도 여행을 합시다~
토쿠사부로 : 가자~!
전원퇴장하고, 다음 장면으로 계속된다.
제 3장
삼도천의 나루터
무대, 망자들이 오가는, 삼도천의 나루터.
그 옆에 찻집이 세워져있다.
나룻배의 뱃사공·하치고로가, 삼도천 앞에서 망설이는 망자들을 안내한다.
하치고로 : 신입 망자녀석들아 잘 들어라! 삼도천을 건너지 않으면 진짜 죽었다고 말할 수가 없어. 삼도천을 건너서, 염라대왕님의 심판을 받고 나서가 진짜 저 세상인거야. 자자자 현세에의 미련을 끊고 삼도천을 건너라! 핫핫핫
그 말에, 잇따라 배에 올라타는 망자들. 야스지로와 키로쿠가 나타난다.
야스지로 : 키로쿠! 빨리 빨리! 나룻배 타는데 늦겠어
키로쿠 : 도련님,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죽는데에 서두르지 않아도 되잖아요. 한숨 쉬다 가죠.
야스지로 : 한숨 쉬자고 해도, 쉴 만한 곳 따위…(찻집을 발견하고는)있네~! 뭐야, [메이도·카페]? (눈동자가 빛나며) 혹시 귀여운 아가씨가 있고 ‘다녀오셨쪄요 주인님~ 맛있어져라~ 러브♥주입!’ 같은 거 해주는 곳인가? 재밌을 것 같은데. 가자가자~ (찻집에 들어서며) 실례합니당~
(*冥途명도와 메이드メイド의 발음이 같은 말장난)
찻집의 점원, 하츠네가 나와
하츠네 : 네에 어서오세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시죠. 거기 앉으세요 지금 차 내올테니까.
야스지로 : 뭐야. [메이도·카페]가 아니잖아.
하츠네 : 뭘 기대하신거에요? 명도에 있는 찻집이니까 메이도·카페. 어디가 이상한건데요?
야스지로 : 아니아니 아니에요 아니에요(웃음)
소란스러운 토쿠사부로 일행이 도착한다.
전원 : 복어의 독을 다 같이 먹고~~
하츠네 : 명랑한 분들이신가 봐요. 에도에서 오셨나요?
토쿠사부로 : 그럼. 후카가와 출신의 에도 토박이지.
하츠네 : 다 같은 무늬를 하고 계신데… 별난 무늬네요.
토쿠사부로 : 복어의 간을 먹고 이 세상에 왔으니까, 복어무늬야.
키로쿠 : 저랑 친구네요~ 저는 키로쿠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토쿠사부로 : 친구라고 하시면?
키로쿠 : 저는 고등어를 먹고 탈이 나서 명도에 왔거든요~ 고등어랑, 복어. 바다의 친구잖아요 그쵸?
잇파치 : 웃기지마쇼! 이쪽은 에도에서 제일가는 쌀 도매상 [코토부키야]의 도련님 토쿠사부로님이라구. 복어의 독에 탈이 났다고 해도 댁처럼 상한 고등어를 먹고 죽은 거랑은 급이 달라. 우리 나리는 돈이 남아돌아서 주체하지 못하고, 사바세계의 유희란 유희는 다 해본 다음에, 차라리 저 세상에라도 가볼까 하고, 맛있는 복어 나베에 간을 풀어 넣어서, 명도관광여행을 오기로 계획하신거란 말야. 상한 고등어를 먹고 오게 된 댁 따위하고 같은 취급을 해선 곤란하다굽쇼~
키로쿠를 바보 취급하며 웃는 잇파치와 게이샤들.
야스지로 : 썩은 고등어라서 미안하구만!! 인간의 가치는 돈이 있고 없고로 정해지는 게 아냐. 확실히 키로쿠는 가난뱅이야. 그렇지만 말야, 가난뱅이에게도 즐거움은 있다구. ‘열심히 일한 뒤의 한 잔. 고등어를 안주로 한잔 하는 거, 그게 즐거움이란 말이야. 고등어 한 마리를 다 먹어버리면 너무 아까우니까, 남은 고등어를 먹었던 게 운이 나빴을 뿐이라구. 그것도 5일이나 지난 거를! 그런 키로쿠는 바보가 맞아. 나 보다도 몇 배는 더 바보야. 그렇지만, 당신들에게 비웃음 살 이유는 없어!
토쿠사부로 : 잇파치, 저 분이 하시는 말씀대로다. 나를 치켜세워주는 건 기쁘지만, 다른 분을 깎아내리면 안 되지. 사과드려라.
잇파치 : 네에
야스지로 : ……키로쿠, 용서해주라.
키로쿠 : 도련님 정말 뭐하시는 거에요~!
토쿠사부로 : 하하하, 재밌는 분이시군요. 당신은?
키로쿠 : 이 분은, 오사카 제일의 환전상 [콘다야]의 도련님, 야스지로님이세요. 도련님은 [쇼게츠도]라는 오사카 제일의 화과자점의 아씨에게 첫눈에 반하셔서 말이에요…
야스지로 : 키로쿠,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어!
토쿠사부로 : 괜찮아요. 옷깃이 스치는 것도 인연이라고 하잖아요. 명도에서 만나게 된 것도 뭔가의 인연일거에요. (키로쿠에게) 첫눈에 반하셔서, 그리고?
키로쿠 : 첫눈에 반하셔서…여기에 계십니다.
토쿠사부로 : 네에?
야스지로 : 상사병으로 이쪽 세계에 왔답니다…
잇파치 : 상사병으로, 죽었다구요?
야스지로 : 네에
생각지도 못한 사인(死因)에 일동 박장대소하는 중, 토쿠사부로만은 감동한 듯
토쿠사부로 : 당신, 진짜 대단하네요!
야스지로 : 엥?
토쿠사부로 : 나도 여자들에게서 몇 번이고 들은 적이 있어요. ‘당신이 없으면 저는 죽어요’ 하지만 진짜로 죽은 녀석은 한명도 없었죠. 죽을 만큼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말 뿐이고,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죽을 만큼 사람을 좋아해서, 상사병으로 죽다니. 당신, 야스지로 씨라고 했던가요. 당신 정말 대단해요!
야스지로 : 왠지 부끄럽네요…
토쿠사부로 : 그래서, 상대 되시는 분은 아직 사바세계에?
야스지로 : 아씨, 아, 오스미 님이라고 하는데요, 아씨도 저를 그리워하다가 상사병으로 돌아가셨어요
토쿠사부로 : 그러면, 만날 수 있는거 아닙니까?
야스지로 : 아씨를 만날 수 있다구요?
토쿠사부로 : 명도에는 시간 같은 건 없는 것 같던데. 빨리 죽건 늦게 죽건 죽은 사람은 모두 모여있다고 들었어요.
야스지로 : 진짜루요?
하츠네 : 진짜야. 근데, 그건 염라대왕님의 심판을 끝내기 전까지. 심판이 끝나면 지옥과 극락으로 나눠져서, 헤어지고 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어.
야스지로 : 키로쿠, 빨리 삼도천을 건너자. 아씨가 지옥에 가고 내가 극락행이라도 되버리면 다시는 만날 수 없어지잖아.
키로쿠 : 지옥에 가는건 도련님이시겠죠!
토쿠사부로 : 좋아요. 저희도 발 벗고 나서서 도와드리죠.
잇파치 : 나리?
토쿠사부로 : 두 사람 사랑의 성취를 마지막까지 지켜 보는거야. 죽을 만큼 사랑에 애태우던 두 사람이다, 이걸 보지 않으면 에도 토박이가 아니야! 야스지로씨,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함께 하게 해주세요.
야스지로 : 처음 오는 명도, 동료가 많을수록 마음이 든든하죠. 힘을 빌려주신다니, 잘 부탁드려요.
하츠네 : 재밌겠다! 나도 갈래! 나는 하츠네, 찻집 점원이 돼서 이제 백오십년 짼데 벌써 진절머리가 나서. 그리고 삼도천을 한번도 건넌 적이 없어서 건너보고 싶었어, 괜찮지?
야스지로 : 네에, 그럼요.
토쿠사부로 : (하츠네에게) 그래서, 다음 나룻배는 언제 출발이지?
하츠네 : (가게 안쪽을 향해) 모쿠베에씨, 모쿠베에씨!
가게 안쪽에서 뱃사공인 모쿠베에가 나온다.
모쿠베에 : 무슨일이야?
하츠네 : 다음 배는 언제야?
모쿠베에 : 어 요즘 벌이가 시원찮아서, 머릿수만 차면 언제든 출발할 수 있죠.
야스지로 : 그럼 바로 출발해주세요.
모쿠베에 : 예에
야스지로 : 참, 뱃삯은 6문으로 괜찮죠? 6문이래.
모쿠베에 : 6문! 언젯적 얘길 하시는 거요? 물가도 올랐구만! 언제까지고 6문으로 해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가게의 찻값도 20문은 받는다구요. 뱃삯은 한 사람 6량이요!
(*문文과 량両의 가치 차이
에도시대의 화폐는 금화, 은화, 동전銭貨이 있었고 서로 각각의 시세가 있었다. 야스지로네 가문이 하는 환전상 [콘다야]는 각 화폐끼리 환전을 해주고, 예금 및 대부업을 하는 등 현대의 은행같은 곳. 금화의 가장 큰 단위가 량이고 동전의 가장 작은 단위가 문이다. 1량은 현대의 돈으로 약 7만5천엔, 1문은 약 12엔.)
전원 : 6량?!
야스지로 : 그런 말도 안되는... 삼도천의 뱃삯은 옛날부터 6문으로 정해져 있잖아요. 사나다 유키무라씨도 6문의 동전을 문장으로 깃발에 내걸고, 삼도천의 뱃삯 6문만 있다면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며 용감하게 싸우지 않았습니까! 6문은 바꾸면 안돼요!
모쿠베에 : 바꾸면 안된다니 참내 싫으면 건너지 마시던가.
토쿠사부로 : 삼도천을 건너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갑자기, 네토리 피리(가부키에서 요괴, 유령등이 등장할 때 연주하는 악기)가 울리며, 조명이 어두워진다.
모쿠베에 :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사이를
하츠네 : 앞으로 영원히 떠돌게 되어
모쿠베에 : 죽을수도 없고
하츠네 : 살 수도 없는
두 사람 : 원령이 되어 원망하게 되지!
조명, 원래대로 돌아간다.
야스지로 : 안돼, 나, 유령 싫어해. 유령이 되는건 싫어~~~토쿠사부로씨, 당신 주체 못할 정도로 돈을 갖고 있었다고 했죠?
토쿠사부로 : 명도에서는 삼도천의 뱃삯으로 6문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해서, 사바에서 전부 써버리고 왔소…
모쿠베에 : 지옥에서도 돈이 최고야! 돈이 없으면 유령이 되어, 구천을 영원히 떠도는 거지 뭐(웃는다)
야스지로 : 당신, 어디서 본적이 있는데… …앗, 아지가와의 뱃사공, 모쿠베에씨 맞죠?
모쿠베에 : 왜 알고 있는 건데?
야스지로 : 역시 그렇죠? 저는 [콘다야]의 야스지로입니다만. 한번 뵌 적이 있지요~?!
모쿠베에 : 아앗!!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하는 모쿠베에
야스지로 : 키로쿠, 빨리 붙잡아!
키로쿠, 모쿠베에를 붙잡는다.
모쿠베에 : 이거 놔! 이거 놓지 못해!
야스지로 : 소란 피우지 말아요. 당신, 우리 아버지에게 빚이 좀 있지요. 분명히, 50량…(천 주머니 안에서 증서를 꺼낸다) 여기있다. 아지가와의 뱃사공 모쿠베에, 50량을 빌려간 증서에요. 기억 못한다고는 안하시겠죠?
모쿠베에 : 여긴 명도야. 사바세계의 증서 따위 관계없어.
야스지로 : 지옥에서도 돈이 최고야, 당신이 그랬죠. 죽어버리면 빚이 청산될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에요. 정 뭐하면, 염라대왕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려 볼까요?
모쿠베에 : 안돼, 그것만은…
야스지로 : 그러면, 우리 두 사람에, 에도에서 오신 분들이 다섯명. 메이도·카페의 하츠네씨까지 해서 도합 8명. 뱃삯 48량을, 당신의 빚과 맞바꾸는 건 어때요?
모쿠베에 : ……예잇
야스지로 : 그럼 삼도천을 건너볼까요. 가장 좋은 배를 준비해주시죠!
음악과 함께, 커튼이 닫히고 야스지로 혼자 노래 부르기 시작한다.
야스지로 : 아아아 아아아…
죽은 지금에도 사라지지 않네
사랑스러운 이의 모습은
반해서 슬픈 연정
마음속에 떠올리고는 사랑에 미쳐가네
아아 사랑의 슬픔은 십만억토十萬億土
아아 사랑의 고통은 삼천세계三千世界
어디에 피어도 사랑의 꽃
명도에 피우는 사랑의 꽃
야스지로 : 아씨, 기다려요!
다음 장면으로 계속된다.
제 4장
가무음곡봉황선
무대, 봉황의 형상을 한 호화로운 나룻배. 배 위에는 토쿠사부로, 키로쿠, 하츠네, 모쿠베에, 잇파치, 타츠미 게이샤들이 화려한 의상으로 갈아입고 타고 있다.
토쿠사부로 : 지옥에서도 돈이 최고라니
기가 막히구만 정말 질렸어
하지만 지지않을거야 유쾌하게 살아가는 법을 깨우친 이 몸이시다
전원 :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そーりゃ そりゃ そら ありがたや そーりゃ そりゃ そら なんまいだ
ありがたや를 ‘감사합니다’로 번역했는데 단순한 감사하다가 아닌 좀 더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어떠한 것을 떠받들며 그 존재에게 감사를 전달하는…그런 이미지입니다…)
토쿠사부로 : 지옥에서도 지혜가 있다면
풍류 넘치는 여행길의 떠돌이들
삼도천도 멋들어지는 배로
노래부르며 소란피우며 몹시 만족스럽구나
전원 :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모쿠베에 : 이봐, 너무 날뛰지 마. 뱃전에 몸을 내밀면 위험해. 떨어지면, 살아난다!
토쿠사부로 : 살아난다니, 우리들 죽었잖아
모쿠베에 : 죽은 녀석이 죽으면, 되살아나는 거야!
키로쿠 : 뭐라구요? 정말로 되살아나요? 재미있는데요!
모쿠베에 : 안된다니까, 이상한 짓 하면. 건너편에 도착해서 장부랑 사람 수가 맞지 않으면 또 시말서 써야 된다고. 골치 아픈 짓 하지 마!
옷을 갈아입은 야스지로, 하나미치에서 튀어나와서 은교에. 그것에 호응하여 토쿠사부로 일행도 은교에.
야스지로 : 명도는 기쁘구나 영혼님들이 지나고
소원이 이뤄지는 밀회의 날
도깨비나 염라대왕이 뭘 어쩌겠어
사랑의 힘이 승리할거야
전원 :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야스지로 일행은, 은교를 지나간다. 커튼이 닫히고, 본무대는 다음 장면으로 전환되어간다.
제 5장
명도환락가·6도의 갈림길
전장의 넘버는, 명도환락가의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가난뱅이 신과, 망자들로 이어진다. 무대, 명도환락가…브로드웨이까지도 능가 할 정도의 화려함이다.
가난뱅이 신 : 신도 부처도 인간님도 모두 사이좋게 저 세상 살이
도깨비도 망자도 술에 취하면 사이좋게
앞으로 영원히 친구해요
전원 :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치고로 : 좋았쓰! 신입 망자 녀석들, 가라!
넘버가 끝나자, 야스지로와 토쿠사부로의 일행이, 노래하고 춤추며 등장한다.
야스지로 일행 :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야스지로 : 엄청 번화한 곳에 왔네요. 어디로 가면 좋을지 전혀 모르겠어요.
토쿠사부로 : 야스지로씨, 저기에 명도관광안내소라고 써있는 장대를 든 녀석이 있네요.
야스지로 : 마침 잘 됐어. 물어보자
야스지로, 명도관광안내소의 안내역·가난뱅이 신에게,
야스지로 : 저어 여보세요, 잠깐 말씀좀 여쭙고 싶은데요. 여기는 뭐하는 곳인가요?
가난뱅이 신 : 당신들, 신입이군요.
야스지로 : 네에, 처음 왔거든요!
가난뱅이 신 : 그렇게 뽐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몇 번이고 오는 사람은 없으니까.
야스지로 : 그건 그래요.
가난뱅이 신 : 아무튼 알려줄게요. 여긴 6도의 갈림길이에요. 길이 여섯 갈래로 나뉘어져 있죠
야스지로 : 아~6도의 갈림길. 명도의 입구로군요. 이쪽 길은 빨간 도깨비 불빛이나 파란 불빛의 네온이 빛나고 있고, 굉장히 북적이네요.
가난뱅이 신 : 저쪽은 명도의 환락가. 요정이나 레스토랑. 아, 그리고 바나 클럽 같은 게…
야스지로 : 엥 그런게 있나요?
가난뱅이 신 : 그럼요, 사바세계에만 있고 명도에 없는 건 없어요.
키로쿠 : 도련님, 저쪽을 보세요. 그랜드 캬바레 [불구슬]. 오늘의 쇼는 [유령의 라인댄스]라고 써있는데… 유령의 라인댄스라니, 어떻게 해서 다리를 올리는 걸까요?
잇파치 : 그 옆은 [해골의 스트립쇼]……대체 뭘 보여주는 걸깝쇼?
토쿠사부로 : 정말로 뭐든 있군. 이거 지루할 틈이 없겠는걸. 그런데 당신, 명도관광안내소의 안내역인가보군.
가난뱅이 신 : 네에, 그래요.
토쿠사부로 : 그런 것 치고는, 조금, 색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당신도 같은 망자인가?
가난뱅이 신 허둥지둥 장대 뒤에 숨어서
가난뱅이 신 : (얼굴을 내밀고) 나, 나는, 가난뱅이 신인데…
야스지로 : 네?
가난뱅이 신 : 가난뱅이 신…
토쿠사부로 : 예?
가난뱅이 신 : 가난뱅이 신…
키로쿠 : 오?
가난뱅이 신 : 가난뱅이 신…
일동 : 엥?
가난뱅이 신 : 몇번이고 말 하게 하지 마 …
야스지로 : 당신, 그 ‘가난뱅이 신?’
가난뱅이 신 : 가난뱅이 신에 그거 저거가 어딨어 그냥 가난뱅이 신이야!
토쿠사부로 : 그냥 가난뱅이 신이 어째서 명도의 관광안내 같은 걸 하고있는 거요?
야스지로 : 그러게.
가난뱅이 신 : 저, 어느쪽이냐고 하면 믿음직스럽지 못한 가난뱅이 신이라서, 사바세계에서는 장사할 수 없게 되어 명도까지 흘러들어 왔거든요. 염라대왕님이 극락에 가도 좋다고 말씀해주시면 저 복의 신이 될 수가 있어요!
키로쿠 : 가난뱅이 신이 복의 신으로
가난뱅이 신 : 네에
일동, 배를 감싸안고 웃는 와중, 야스지로와 토쿠사부로는
두 사람 : 웃지 마!
야스지로 : 가난뱅이 신이 복이 신이 되어도 괜찮잖아
토쿠사부로 : 복의 신이 되는 꿈을 꾸는게 뭐가 나빠
야스지로 : 빈쨩…!
(*가난뱅이 신, 貧乏神びんぼうがみ의 앞글자를 따서 애칭으로 부름)
가난뱅이 신 : …빈쨩? 왠지 그리운 울림이네
(*하나가타 히카루는 05년 화조 공연 [くらわんか쿠라완카]에서 가난뱅이 신을 연기한 적이 있다. 그 공연에서도 주인공이 가난뱅이 신을 빈쨩이라고 부름)
야스지로 : 꿈을 버리면 안돼! 나는 빈쨩의 꿈 계속 응원할테니까..! 함께 꿈을 꾸자
가난뱅이 신 : 고마워요
토쿠사부로 : 함께 힘내자
가난뱅이 신 : 고마워요…
얼싸안고 우는 야스지로, 가난뱅이 신, 토쿠사부로 세 사람.
키로쿠 : 일이 웃기게 되어버렸네요.
하츠네 : 그건 그렇고 호화로운 극장들이 늘어서 있네요.
츠타키치 : 저걸 봐요, 극락가부키좌의 공연 [츄신구라]래요
소메지 : 하지만 출연자는 이치카와 단쥬로라고밖에 써있지 않네요.
가난뱅이 신 : 그걸로 괜찮아요. 초대부터 12대까지의 단쥬로가 총 출연. 오오보시유우노스케도 단쥬로, 엔야한간도 단쥬로. 코우노모로나오도 칸페이도 사다쿠로우도, 말의 다리까지도 단쥬로인 호화판. 매일 만석사례로 난리났죠.
(*이치카와 단쥬로 : 市川團十郎, 가부키에서 유명한 이치카와류에서 내세우는 가부키배우의 예명. 이치카와 단쥬로 라는 이름을 대대로 물려받아 실제로 12대까지 있음)
야스지로 : 저쪽에서 공사를 하고있는거 같은데, 저거는요?
가난뱅이 신 : 저건, 한큐의 고바야시 이치조씨가 극락과 지옥을 잇는 철도를 건설하고 있는거에요. 명도전기궤도라고 해서, 저게 완성되면 편리해질 거에요. 역에는 명도백화점이라는것도 만들어서, 명도의 첫 터미널과 연결된 백화점이 되고… 아 참, 명도가극단 이라는게 있는데 한번 보세요. 그건 일본 제일, 아니 세계 제일이에요. 재밌어요.
야스지로 : 명도가극단!!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창단한 한큐한신그룹의 초대 회장 고바야시 이치조의 이야기. 실제로 한큐전철과 이어진 한큐백화점은 일본 최초의 터미널 백화점이다.)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제 6장
명도, 내 마음의 고향
날개를 짊어진 명도가극단의 스타가 시모테의 하나미치에서 등장하여 노래부른다.
명도의 스타 : 황천의 나라 내 마음의 고향
어째서 사람은 죽어서 더욱 반짝거리나
명도의 스타 : 예스!
막이 열리면, 한큐전차의 한 토막 앞.
전차의 문이 열리고, 라인댄스가 시작된다.
야스지로 : 키로쿠 저것 좀 봐! 화려하다~
야스지로 : 토쿠사부로씨 나가봐요!
야스지로 : 그럼 저도 사양않고…
야스지로, 토쿠사부로, 키로쿠, 가난뱅이 신이 나와서 함께 춤춘다. 라인 댄스가 끝나고
야스지로 : 고마워요~ 너무 좋았어요~ 고마워요~~
라인댄스, 다시 한큐전차에 올라탄다. 막이 닫히고 다음 장면으로 계속된다.
제 7장
명도환락가·하나노미치
무대, 명도환락가.
명도가극대극장에서 나온 가난뱅이 신과 야스지로 일행.
가난뱅이 신 : 여러분, 어떠셨나요. 명도가극단 매우 좋았지요?
야스지로 : 좋네요 정말 좋아요. …저희도 들어갈 수 있나요?
가난뱅이 신 : 안돼요. 저긴 아름다운 여성분들만 들어갈 수 있어요. 당신들은 어렵겠네요.
야스지로 : 뭐지, 미묘하게 상처받네…
키로쿠 : 계속 이것만 상연하는건가요?
가난뱅이 신 : 달마다 바뀌어요. 다음에 사바세계에서 대유행했던 [베르사이유의 연꽃]이란걸 상연한다던가 그러던데.
야스지로 : 연꽃? 장미가 아닌가요?
가난뱅이 신 : 명도에서는 연꽃이 어울리잖아요? 저기에 예고 포스터가 붙어있어요.
야스지로 : …작, 연출 우에다 신지. 이거 진짜네!
토쿠사부로 : 자자자잠깐 기다려봐. 저 선생님, 아직 완전 건강하신데…
(*다카라즈카 가극단 연출가 우에다 신지. 실제로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연출했다. 1933년생- 현재는 극단 특별 고문, 사단법인 일본연극협회 회장.)
가난뱅이 신 : 잘 봐보세요, 이름 옆에 뭔가 써있잖아요.
야스지로 : 어디어디, 조만간 상연 예정.
토쿠지로 : 그러면 뭐야, 곧 이쪽 세상에 온다는 이야기야?
키로쿠 :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살고 있을텐데
하츠네 : 사바세계의 인간은 모두 그래. 열심히 살고 있지.
츠타키치 : 그런데 우린 명도구경을 한답시고 복어의 간을 먹고 죽어서 왔구…죄가 깊은 인간들이네.
가난뱅이 신 : 당신들, 자자자살한거야?
츠타키치 : 자살…자살, 이려나?
토쿠사부로 : 자살이면 어떻게 되는데?
가난뱅이 신 : 자살은 살인과 동급의 큰 죄로 취급받아서 틀림없이 지옥행일거야
소메지 : 난 싫어, 지옥에 간다니. 나리 어떻게 좀 해 주세요
잇파치 : 자살이 아니라, 유행병으로 죽었다고 하면 어때요?
츠타키치 : 연기해서 속여넘기는 건가요. 저 그거 잘해요.
하츠네 : 안돼, 안돼. 상대는 염라대왕님이라고요. 거짓말 하면 혀가 뽑힐 거에요.
모쿠베에 : 게다가 진실을 비추는 수정거울이란 게 있어서, 거짓말은 일절 안 통해요
야스지로 : 빈쨩, 당신 극락에 가고 싶어했죠
가난뱅이 신 : 네에
야스지로 : 우리들도 마찬가지에요. 같이 극락에 가지 않을래요?
가난뱅이 신 : 네에…
야스지로 : 어떻게 좀 안되나요?
가난뱅이 신 :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의 힘으로는…저도 미인좌의 신세를 지는 처지라서…
야스지로 : 미인좌? 그건 뭐에요?
가난뱅이 신 : 연무장에 있어요. 오노노코마치님이나 시즈카고젠님, 그 외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미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춤을 추죠. 그건 정말 훌륭해요.
(*오노노코마치, 시즈카 고젠 등 일본 역사에 기록으로 남아있는 유명한 미인들의 이름)
토쿠사부로 : 그거 좋네요. 가보죠
가난뱅이 신 : 그렇지만, 시즈카고젠님이 감기로 휴연 중이에요.
토쿠사부로 : 죽은 사람도 감기에 걸리나?
가난뱅이 신 : A형이나 B형이나 옛날에는 없었던 인플루엔자라는 게 유행하고 있거든요. 옛날 사람에게는 면역이 없어서…그치만 최근에 새로 온 아가씨가 뭐더라 오사카의 화과자점의 딸인데, 대역을 하고 있다던 것 같아요.
야스지로 : 아……
가난뱅이 신 : 무슨일이에요? 그렇게 몸을 떨다니 당신도 감기에요?
야스지로 : …아씨다!!!
쏜살같이 뛰어나가는 야스지로, 전원이 야스지로를 쫓아 퇴장한다.
다음 장면으로 계속된다.
제8장
일본미인도 두루마리
무대, 와카(일본 시조)의 패널이 늘어선 춤 무대.
오노노코마치를 중심으로, 고세치의 무희가 춤춘다.
(*음력 동짓달에 축일을 중심으로 나흘에 걸쳐 이뤄지던 궁중의 무악행사.)
[일본미인도 두루마리]
오노노코마치 : 벚꽃의 빛깔은 무상하게 색이 바라네
내가 세상의 근심에 젖어있는 사이에
시즈카고젠의 대역·오스미가 스이칸 카리기누를 입은 모습으로 나선다.
시즈카고젠(오스미) : 아아아 아아아
요시노 산봉우리의 하얀 눈을 헤치고 나아가
모습을 감춘 그 사람의 흔적이 그리워라
(*각각의 역사 인물이 지은 와카를 노래로 부름)
춤이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야스지로가 뛰쳐나온다.
야스지로 : 아씨!
오스미 : 야스지로님…!
갑작스러운 상황에 일동, 두 사람을 수상쩍게 바라본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본 채, 다시 만난 기쁨에 할 말을 잃고 있다.
미인좌의 문지기 코고로가 뛰어나온다.
코고로 : 본 공연 중에 무슨 짓들이야! 네놈은 뭐하는 녀석이냐? (객석을 향해) 정말 죄송합니다, 방해꾼은 얼른 치우고 아가씨들의 춤을 계속 보시겠습니다. 잠시만, 정말 잠시만 기다려주세…
코고로가 야스지로를 끌어내려고 하는 와중, 토쿠사부로 일행이 뛰어들어와서 코고로를 에워싼다.
토쿠사부로 : 방해하지 마!
코고로 : 뭐, 뭐야 네놈들은!
토쿠사부로 : 우리들이 누군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지금 저 두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구. 조금만 봐 줄 수는 없겠어?
코고로 : 그런 억지가 통할 것 같냐?!
하츠네 : 자꾸 꾸물대면 뚝배기를 깨버리는 수가 있어!
하츠네의 공갈에 비명을 지르며 퇴장하는 코고로.
토쿠사부로 : 야스지로씨, 방해꾼은 없어졌다구!
계속해서 서로를 바라보는 야스지로와 오스미…
야스지로가 결심한 듯,
야스지로 : 빠, 빠른…(목이 메듯)…빠른 물살 바위에 가로막힌 폭포의 물줄기
오스미 : 갈…갈라진들 마지막에는 다시금 만나리
그걸 말하는 것 만으로도 힘이 가쁜 두 사람.
야스지로 :빠른 물살 바위에 가로막힌 폭포의 물줄기
오스미 : 갈라진들 마지막에는 다시금 만나리
단숨에 사랑하는 마음 모두 담아 노래하는 두 사람.
토쿠사부로 일행도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며 응원한다.
토쿠사부로 일행 : Ah Ah Ah… Uh Uh Uh…
야스지로 :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없었던 마음을
저 세상에서 이루는 행복을
(Ah… 저 세상에서 이루네)
움직이지 않는 심장 두근거리고
(움직이지 않는 심장 두근거리고)
오스미 : 핏기가 없는데도 상기되는 뺨
(핏기가 없는데도 상기되는 뺨)
토쿠사부로 일행 : Ah…
야스지로 : 아아 사랑의 행복 십만억토十萬億土(Ah…)
오스미 : 아아 사랑의 기쁨 삼천세계三千世界(La…)
두 사람 : 어디에 피어도 사랑의 꽃(Ah…)
명도에 피우는 사랑의 꽃(La…)
토쿠사부로 일행: 어디에 피어도 사랑의 꽃
두 사람 : Ah…피어난(명도에 피어난 사랑의) 사랑의 꽃(명도에 피어난 사랑의 꽃)
야스지로와 오스미, 손을 맞잡으려고 하나 몸을 떠느라 스치듯 엇갈린다.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이 너무 감질나는 토쿠사부로 일행.
미인좌의 단장·아코기가 코고로의 안내로 나타난다.
아코기 : 여길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냐. 천하의 미인좌를. 멋대로 행동하면 곤란해. 코고로, 막을 닫거라. 이런 서투른 연극을 관객들에게 보일 수 없어.
코고로 : 네이!
허둥지둥 뛰어 사라지는 코고로. 다음 장면으로 계속된다.
제 9장 미인좌의 분장실A
무대, 축의불축의막 앞(祝儀不祝儀幕前).
전장의 사람들이 남아있다.
토쿠사부로 : 당신은 누구야?
가난뱅이 신 : 단장님이에요. 이 [미인좌]를 쥐고있는 단장, 아코기씨입니다.
아코기 : 빈! 이놈들은 뭐하는 놈들이야?
가난뱅이 신 : 오, 오스미님의…
아코기 : 오스미의 뭔데?
야스지로 : (앞으로 나서며) お、お、お、お……(나,나,나,나……)
(*일본어로 夫おっと, 남편)
키로쿠 : おしっこ、ですか?(오줌, 인가요?)
야스지로 : 멍청아! 남편이야!
오스미 : 야스지로님!
아코기 : (크게 웃으며) 웃기지 마, 이 오스미가 순진한 채로 이쪽으로 오게 됐다는 건 이미 다 알고있어. 이 아코기님을 속이는 건 염라대왕을 속이는 것 다음으로 어렵다는 거, 명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구. 관서지방의 나리, 잠꼬대를 하려거든 자면서 하도록 해.
야스지로 : 자, 잠꼬대가 아니야! 지금 여기에서 부부가 됐다고! 그걸로, 괜찮겠지! 오스미!
오스미 : 네에, 기뻐요…!
아코기 : 부부가 되었다, 그래 뭐 좋아. 그럼 이 여자의 빚을 대신 갚아보시지.
야스지로 : 빚!?
아코기 : 삼도천의 뱃삯 6량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밥값, 옷값, 화장품 값…이자가 이자를 낳아서 대충 100량 정도인데.
야스지로 : 배, 100량!
오스미 : 그런 뻔뻔한…!
아코기 : 내 이름에 딱 어울리지? (웃는다) 어때, 낼 수 있겠어?
(*아코기, 阿漕 일본어로 뻔뻔하다, 탐욕스럽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야스지로 : ……
아코기 : 못 내면 나가주셔야지. 머리가 몸통에 붙어있을 사이에 말야… 나리님들, 나와주세요.
사나운 음악과 함께, 쇠몽둥이를 든 빨간 도깨비 아카사부로와 빨간 도깨비 아카고로가 등장.
도깨비들 : 빨간 도깨비 빨간 도깨비의 행차시다
빨간 도깨비 빨간 도깨비의 행차시다
야스지로 : 지, 진짜 도깨비야!
한 덩어리가 되어 벌벌 떠는 야스지로 일행.
빨간 도깨비 아카사부로 : 아코기, 명도의 평안을 어지럽히는 수상한 녀석들은 어딨지?
아코기 : (야스지로 일행을 가리키며) 이녀석들이에요!
빨간 도깨비 아카고로 : (기분나쁘게 웃으며) 자아 그럼, 어떻게 요리해줄까나?
아코기 : 찢어발기든, 지옥의 가마솥에서 삶아버리던 마음대로 하세요. 여자들은 첩으로라도 삼으셔도 괜찮구요. 이 미인좌에 걸맞는 인물은 없으니까요.(웃는다)
여자들 : 열받네!
그곳에, 코고로가 달려온다.
코고로 : 단장님, 밖에서 손님들이 소란스러워서 도무지 수습할 수가 없어요!
아코기 : 도중에 막을 닫았으니, 입장료라도 환불해달라고 하고 있는 거겠지. 한번 받은 입장료는 절대 돌려주지 않을 거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강제로 쫓아버리도록.
코고로 : 그게 아니라…
아코기 : 뭐가 아니란 거야?
코고로 : 그게… 죽어서 처음으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만났다고… 거기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의 뒷내용을 보고 싶다고, 입장료를 10배 더 내도 괜찮으니까, 라며 난리인거에요.
가난뱅이 신 : 코고로씨, 코고로씨. 도깨비 나리님들에게 술이라도 드리며 잠시 기다려달라고 해봐요.
아코기 : 빈, 쓸데없는 말 하지 마.
가난뱅이 신, 아코기의 귓가에 속삭인다.
가난뱅이 신 : 누님… 대박의 찬스를 뻔히 보면서 놓치시면 안됩니다
아코기 : 뭣, 대박이라고?
가난뱅이 신 : 이 두 사람을 무대에 내보내서, 돈을 버시는 거에요.
아코기 : 두 사람을 무대에 내보내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
가난뱅이 신 : 손님인 망자들은, 속세에서 쓴맛이란 쓴맛은 다 보고 여기에 와 있잖아요. 누님도 그렇지 않아요? 속세에서 고생했으니까, 더는 고생하고 싶지 않다고, 욕심쟁이 단장이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모두에게 엄하게 대해왔잖아요. 그렇지만, 본심으론, 맑은 마음이 되어서 극락에 가고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것 아닌가요?
아코기 : 극락……
아코기가 극락을 꿈꾸는 사이에, 가난뱅이 신은 야스지로 일행이 빨리 옷을 갈아입도록 손짓하고, 코고로는 도깨비들을 데리고 퇴장한다.
두 사람만 남은 가난뱅이 신과 아코기.
가난뱅이 신 : 손님들도 그래요, 손님들도 맑은 마음과 만나고 싶은거에요. 손님들은, 순수한 사랑에 굶주려있어요. 입장료를 10배로 해도, 보고싶다고 하는 것이 그 증거… 이 미인좌의 공연에도 질려서, 입장 객 수도 부쩍 줄었죠. 여기서 한방 터트려서, 저랑 극락에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코기 : (가난뱅이 신의 말에 감동해서) ……극락……
가난뱅이 신 : 누님, 극락에서 밝은 노후를 보냅시다!
아코기 : 좋아
가난뱅이 신이 노래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화답하는 아코기.
가난뱅이 신 : 삼도천에 흐르는 맑은 물에
아코기 : 명도의 더러운 때를 씻어 흘려보내고
가난뱅이 신 : 바늘 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針の山 바늘로 되어있어 저승에 있는 망자를 괴롭히는 산)
아코기 : 마음의 근심을 날려버리고
가난뱅이 신 : 여생을 보내는 극락 생활
아코기 : 이 손으로 붙잡자 밝은 노후
두 사람 : 모두 사이좋게 밝은 노후
가난뱅이 신 : 여러…
아코기 :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가난뱅이 신 : 야스지로님과
아코기 : 오스미님의 순수한 사랑이야기
가난뱅이 신 : [스토쿠…]
아코기 : [스토쿠인신쥬], 즐겨주세요~!
(*崇徳院心中すときいんしんじゅう
오구라백인일수 66번, 스토쿠인의 와카 ‘瀬をはやみ 岩にせかるる 滝川の われても末に あはむとぞ思ふ 빠른 물살 바위에 가로막힌 폭포의 물줄기, 갈라진들 마지막에는 다시금 만나리’를 소재로 한 [스토쿠인]이라는 제목의 라쿠고. 야스지로가 신사에서 오스미를 만나 상사병에 걸리고, 적어준 시조 절반을 실마리로 온 오사카를 찾아다닌다 등의 소재를 차용함. 心中은 일본어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동반자살을 하다’라는 뜻.)
음악과 함께,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제 10장
분라쿠·스토쿠인신쥬
(*文楽분라쿠 : 浄瑠璃죠우루리-일본의 가면 음악극의 대사를 노래하듯 이야기하는 것에 맞추어 하는 인형극)
무대, 칠흑 속에 신사 입구의 기둥 문이 떠있다.
야스지로와 오스미가 인형 같은 몸짓으로, 코우즈의 신사에서의 만났던 모습을 춤으로 춘다.
인형을 부리는 사람은 키로쿠, 잇파치, 모쿠베에, 코고로.
춤꾼의 타유우(太夫분라쿠에서 노래하는 사람)역에 토쿠사부로와 하츠네.
토쿠사부로, 하츠네 : 연정의 시작은 코우즈의 신사에서
토쿠사부로 : 참배를 끝낸 야스지로 찻집에 앉아 한숨 쉬고 있을 때
하츠네 : 에마도의 찻집말이죠? 잘 알고있죠. 거기는 전망이 좋잖아요, 도톤보리까지 한눈에 보이거든요. 걸터앉으면 금방 따뜻한 차랑 양갱을 가져와요. 거기의 양갱 두껍고 맛있죠. 당신 몇 개나 먹어봤어요?
토쿠사부로 : 조용히 있어! (이야기로) 차를 마시고 있자, 거기에 나타난 것이
하츠네 : 물방울이 똑똑 떨어질 듯 아름다운 용모의 축축한 오스미가
(*일본어에서 미인의 용모를 칭찬할 때 싱싱하고 아름답다는 의미로 水も滴る美女みずもしたたるびじょ,라는 관용구를 쓰는데 미녀美女びじょ비죠 라는 발음과 축축하다ビチョビチョ비쵸비쵸 라는 발음으로 말장난을 하는 것)
토쿠사부로 : 바람에 실려오는 것은 매화의 향기뿐인가
아련한 연심의 빛깔
토쿠사부로 : 세상에 저렇게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도 있구나라며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니, 저쪽에서도 이쪽을 바라보며 방긋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하츠네 : 그건 저쪽이 졌네!
토쿠사부로 : 눈싸움이 아니야! (분위기를 바꿔서) ……나중에 가서, 먼저 돌아간 아가씨를 배웅하고 있자니, 주홍색의 시오세(*塩瀬일본의 견직물 중 하나. 씨실이 굵어 주름지듯 결이 있다)로 만든 차 보자기가 떨어져 있다…… 저기, 차 보자기를 잃어버리지 않으셨나요?
토쿠사부로 :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보자기도 부끄러운 듯
주홍색으로 물들어 있네
토쿠사부로 : (여자 목소리로) 여봐라, 종이(料紙りょうし)를 가져오너라.
하츠네 :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 안돼요. 코우즈 신사 주변에 어부(漁師りょうし)가 어딨어요. 어부는 바다에 가야 있죠.
(*발음이 같은 말장난)
토쿠사부로 : りょうし는 종이 얘기야! 종이에 붓으로 무언가를 쓰시고는, 그것을 나의 손에 건네고 도망치듯 사라지셨다……그 필적을 덧그려보니
토쿠사부로 : 빠른 물살 바위에 가로막힌 폭포의 물줄기
토쿠사부로 : 백인일수에 있는 스토쿠인의 시로, 다음 구절이…
하츠네 : 갈라진들 마지막에는 다시금 만나리
토쿠사부로 : 그 뒷 구절을, 일부러 쓰지 않았다. 쓰지 않은 곳을 보자니, 오늘은 본의 아니게 실례합니다만 언젠가 나중에 다시 만난다면 기쁘겠어요, 라는 아가씨의 마음이 생각되어…
하츠네 : 멍―해지고, 한숨을 후―내쉬고, 상사병으로 꼴까닥… 도달한 곳은 황천의 나라! 거기서부터는 여러분이 보신 그대로입니다!
토쿠사부로 : 간단하게 엔딩내지 마!
음악, 감동적으로 고조되어, 야스지로와 오스미 인형에 마치 피가 통하기 시작한 듯 혼자서 움직이기 시작하여, 사랑의 기쁨을 춤춘다.
코러스 : 빠른 물살 바위에 가로막힌 폭포의 물줄기
전원 : 갈라진들 마지막에는 다시금 만나리
커튼이 닫히고,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제 11장
미인좌의 분장실 B
무대, 미인좌의 분장실.
무대가 파하고, 공연 종료의 태고가 울리는 와중, 야스지로와 오스미, 그리고 토쿠사부로 일행이 분장실로 돌아온다.
아코기와 여자들이 사근사근하게 일동을 맞이하여
아코기 : 아이고,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고생하셨네요. 이봐라 너희들, 무대가 파하기 전에 이분들의 음료와 물수건을 준비해 두라고 얘기했잖아! 눈치가 없네 정말.
배우들 : (불만스럽게) 죄송합니다
키로쿠 : (토쿠사부로에게) 단장, 상당히 사근사근해졌네요 다른사람 같아요.
토쿠사부로 : 당연하지. 매일 공연이 만석이잖아. 이런데도 불만스러우면 염라대왕님 대신 지옥에 보내버릴거야.
하츠네 : 단장님, 이렇게 장사가 잘 되면 오스미씨의 빚도 이미 다 갚지 않았겠어요? 그것뿐이 아니라 되려 돈을 줘야하는거 아니에요, 그쵸 단장님?
아코기 : 어머~~ 돈 얘기 하지 마~ 하츠네씨, 배우가 돈을 밝히면 연기가 섹시하지 않아~호호
가난뱅이 신이 달려 들어온다.
가난뱅이 신 : 큰일 났어요 큰일 났어. 염라청에서 야스지로님을 불러요.
아코기 : 염라청의 호출이라니? 야스지로씨는 여기 와서 얼마 안 지났잖아? 뭔가 착오가 있는거 아냐?
가난뱅이 신 : 진짜에요. 우리 극장만 장사가 잘 되니까, 다른 극장에서 질투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호출이 오도록, 염라청의 관리에게 손을 쓴거에요.
야스지로 : 저어, 호출이란게 뭔가요?
아코기 : 염라대왕님의 심판을 받는거야!
야스지로 : 오오, 염라대왕님과 만날 수 있어! 아씨 잘됐네요~
아코기 : 기뻐할 때가 아니야! 여긴 명도의 입구야. 여기서부터 앞으로가, 염라대왕님의 심판을 받은 다음이, 진짜 명도라구.
모쿠베에 : 사바세계에서 선행을 열심히 한 인간만 극락행, 악행을 거듭해온 인간은 지옥행이라고 정해져 있어요.
하츠네 : 당신들, 사바에서 한번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어? 벌레 한 마리, 죽인 적 없다고 말할 수 있어?
전원, 고개를 젓는다.
아코기 : 모두 지옥행은 결정된거네!
그 말에 일동 소란스럽다.
야스지로 : 지옥은 싫어요 아씨!
오스미 : 야스지로님…
야스지로가 매달리자, 오스미.
야스지로 : 하지만 아씨, 벌레 한 마리 죽인 적 없죠? 분명 극락행이실거에요.
오스미 : ……저, 이 세상에서 뱀이 제일 싫거든요. 무서운 뱀을 보면……몸이 떨리고 정신이 없어져서, 나중에 정신 차리고 보면 꼬리를 붙잡아서 휘둘러서 바닥에 내동댕이치는……버릇이 있어요.
아코기 : 틀림없이 지옥행이야.
오스미 : 무서워요!
하츠네 : 어느쪽이 무서운거야!
키로쿠 : 토쿠사부로님, 당신의 악행은요?
토쿠사부로 : 나는 뱀 따위를 죽인적은 없지만, 여자는 몇 명인가 죽인 적이 있지.
일동 : 헉!
토쿠사부로 : 당신이 없으면, 나는 죽을 거에요. 같은 얘기를 들어서 말이야……후후후
아코기 : 거짓말쟁이도, 지옥행이야!
토쿠사부로 : 무서워!
전원 : (무시한다)
잇파치 : 솔직하게 말하면, 용서를 받을수 있을깝쇼?
아코기 : 어설프게 감추는 것보다는 죄가 가벼워지지 않을까?
잇파치 : 나리!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나리가 전에 소중히 아끼시던 남만에서 온 회중시계…그걸 훔친 건 접니다요!
(*南蛮なんばん에도시대, 포르투갈, 스페인 등 교역했던 서양 전반을 이르는 말)
토쿠사부로 : 뭣, 네가 훔쳤다고?! 같이 찾아주는 시늉까지 하고, 지독한 녀석이네…하지만 좋아, 네게 준 걸로 하마. 그렇게 하면 네 죄가 되지 않겠지.
잇파치 : 나리!
일동, 박수.
소메지 : 나리! 부모님의 유품이라고 하셨던 상아 담배갑!
츠타키치 : 오오시마의 명주로 된 하오리!
(*羽織はおり하오리, 기모노 위에 걸쳐 입는 겉옷, 大島오오시마는 도쿄의 유명한 고급명주 생산지)
키쿠얏꼬 : 니시진의 비단 지갑을 훔친 건
(*西陣にしじん니시진, 교토의 고급 비단 생산지)
세 사람 : 저에요!
토쿠사부로 : 다들 정말 어처구니없는 녀석들이구나…… 너희들에게도 내가 준 걸로 해 주마
세 사람 : 감사합니다!
키로쿠 : 하하하, 저는 정직한 사람으로 유명했다구요. 염라님에게 혼날 일은 하나도 없어요! 아하하하
야스지로 : 너는, 존재 자체가 죄야!
토쿠사부로 : 맞아, 존재 자체로 지옥행이네.
키로쿠 : 그런 잔인한…
하츠네 : 나도 그렇지만, 누구 하나라도 극락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거 같네.
야스지로 : 그렇네요, 다 같이 지옥으로 여행을 떠날까요?
토쿠사부로 : 모두가 함께라면 지옥에서도 재밌어질 거라구!
전원, 미련 없이 지옥행을 각오한다.
그 때, 가난뱅이 신이 갑자기 노래하기 시작한다.
가난뱅이 신 : 가난뱅이 신이라 업신여김 당하고
삼천세계三千世界에 거처를 찾아 헤매
죽지 못해 살아있는 수치에도 익숙해져
단 하나의 꿈만 쫓고 있네
울기 시작하는 가난뱅이 신…….
야스지로 : 빈쨩, 꿈을 응원한다고 해놓고,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들은 지옥에 가겠지만 빈쨩은 극락에 가줘. 지옥에서도 응원할게.
가난뱅이 신 : (눈물을 닦으며) 이제 됐어요. 복의 신이 된다는 꿈은 깨끗하게 접었어요.
야스지로 : 정말 괜찮겠어?
가난뱅이 신 : 네에! 복의 신이 되는 것 보다,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게 좋아요. 같이 지옥에 데려가주세요!
야스지로 : 빈쨩!
가난뱅이 신 : 야스지로님!
야스지로와 가난뱅이 신, 얼싸안는다.
아코기 : 뜻밖의 나니와부시네…하지만 나도 싫어하지 않아, 나니와부시는…코고로, 이 미인좌를 너에게 주마. 확실하게 장사 해줘.
(*浪花節なにわぶし나니와부시, 샤미센 반주에 맞춰 서사를 노래와 말로 전달하는 거리공연. 주 내용은 서민적 의리와 인정에 호소하는 작품이 많으며, 소재는 가부키 등 여러 장르와 당대의 시사적 내용도 포함된다)
아코기 : 나도 같이 데려가줘. 당신들과 함께라면 심심하지 않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코고로 : 단장님, 저도 가겠습니다. 단장님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아코기 : 코고로…! 야스지로씨, 괜찮겠죠?
토쿠사부로 : 식구가 많아져버렸지만, 야스지로 씨, 떠들썩하고 좋지 않습니까.
야스지로 : 그러게요. 명도에 와서, 이렇게 친구가 늘어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여러분, 염라대왕님과 만나러 가봅시다!
일동 : 네!
엔딩으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제 12장
염라대왕의 심판
무대, 염라청.
정면상단에 염라대왕의 옥좌, 그 양쪽에 좌대신·선명, 우대신·광명. 그 외의 명관, 옥졸인 빨간 도깨비, 파란 도깨비가 정렬해있다.
우대신·광명 : 염라대왕님의 심판을 시작하겠다!
좌대신·선명 : 일동, 엄숙하게 맞이하거라!
음악과 함께, 명관, 도깨비들이 합창으로 염라대왕님을 맞이한다.
전원 : 염라 대왕님의 행차시다 무례하구나 머리를 조아리거라
노래소리와 함께 염라대왕이 등장, 착석한다.
염라대왕 : 망자들을 부르거라.
일동 : 예엡!
우대신·광명 : 에도, 요츠야 텐류지 문 앞에서 쓰러져 죽은, 곤파치. 오사카 선착장 도쇼마치에서 실연에 몸을 던진 여자, 오센. 미카와, 오카자키에서 생활을 비관해 동반자살을 한 세자부로 가족. 나가사키 호랑이 병 환자들 단체 일행.
(*虎狼痢病ころりびょう 에도시대에 콜레라를 이르던 말)
일동 : 들어와라!
이름이 불려진 망자들이, 염라대왕의 앞에 두려워하며 나선다.
우대신·광명 : 대왕님, 보고에 의하면 이들은 사바에서 선행을 거듭하였으며, 불쌍한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좌대신·선명 : 염라대왕님, 심판을 내려주소서.
염라대왕 : 선착장 도쇼마치, 오센!
오센 : …네…
염라대왕 : 그대 이외에는, 극락에 보내도록 하겠다.
좌대신이 징을 울린다.
오센 : 염라대왕님, 이건 뭔가 잘못되었어요. 저는 우대신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바에서는 선행을…
염라대왕 : 닥쳐라!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이 염라대왕의 눈은 속일 수 없다. 수정거울에 비추거라!
음악과 함께 수정거울 안에서 천녀와 아수라가 등장하여 노래한다.
두 사람 : 사바의 선악을 분간하는 거울
수정 거울은 속일수가 없네
천녀 : 선행이 비치면 극락에
아수라 : 악행이 비치면 지옥행
두 사람 : 지옥 극락 갈 곳은 어느 쪽
징 소리와 함께 오센이 갑작스럽게 돌변하여.
오센 : 네놈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남자를 속여서 등골까지 빼먹는, 야차 귀신 오센이 바로 이몸이시다! 하하하!
징 소리가 들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오센.
오센 : (웃는 얼굴로) 저, 뭔가 말했나요?
염라대왕 : 야차 귀신 오센, 대규환지옥행을 명한다!
(*大叫喚地獄だいきょうかんじごく 대규환지옥, 오계五戒, 즉 불교 신자들이 지켜야 할 다섯가지 금계-살생,도둑질,불륜,거짓말,음주-를 어긴 자가 간다고 함)
아수라 : 불쌍하구나… 대규환지옥의 형기는 팔천년, 자신의 죄악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좋아… 도깨비들아, 지옥으로 끌고 가거라!
도깨비들 : 예이!
아수라 : Naraka Naraka 몸을 불태우는 팔대지옥八代地獄
(*산스크리트어로 Naraka : 나락那落ナラカ)
아수라를 선두로, 도깨비들이 오센을 끌고 사라진다.
천녀 : 자아, 남아있는 여러분들은 극락정토極樂淨土에 안내 해 드릴게요.
천녀 : sukhāvatī sukhāvatī 행복이 가득 찬 극락정토
(*산스크리트어로 sukhāvatī : 극락정토極樂淨土スカーヴァティー)
극락을 표현하는 듯한 음악이 흐르고, 극락행의 망자들은 천녀의 안내로 퇴장한다.
좌대신·선명 : 다음 망자들을 불러들이겠습니다!
우대신·광명 : 오사카 텐노지, 상사병 남·야스지로
일동 : 들어오거라!
그 목소리와 함께, 야스지로를 선두로 오스미, 토쿠사부로, 가난뱅이 신, 키로쿠, 아코기, 하츠네, 모쿠베에, 잇파치, 타츠미게이샤, 그리고 코고로가 여행객처럼 떠들썩하게 등장한다.
파란 도깨비 아오지로 : 조용히, 조용히, 조용히!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염라대왕님의 앞이다!
야스지로 : 앗, 진짜 염라대왕님이야. 역시 거들먹거리게 생기셨구나
토쿠사부로 : 염라대왕님에게 합장 한번 하지 않으면, 명도 관광에 온 보람이 없지. (두 손을 마주쳐 합장하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파란 도깨비 아오지로 : 일동, 삼가거라, 삼가거라, 삼가거라!
그 기세에 조용해지는 일동.
염라대왕 : 오사카 텐노지, 상사병 남·야스지로.
야스지로 : 네에, 접니다.
염라대왕 : 부름을 받은 것은 그대 한명 뿐이다.
야스지로 : 네에, 알고있습니다.
염라대왕 : 그렇다면 어째서, 여럿이서 뻔뻔스럽게 나서는 짓을 하느냐?
야스지로 : 저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에요.
좌대신·선명 : 대왕님을 우롱하는 게냐!
야스지로 : 아니요.
염라대왕 : (제지하며)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다. 그 이유는?
야스지로 : 제가 어째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는 염라장帳에 적혀있기 때문에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여기에 오고 나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잘 알고 있던 바보 같은 키로쿠, 올곧은 죽음이 보기 좋은 토쿠사부로씨 일행, 엉뚱한 하츠네씨와 모쿠베에씨. 순수한 마음을 가진 빈쨩. 스스로에게 솔직한 아코기씨와 코고로씨.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씨…모두 결점은 있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매력이 있습니다…명도에 와서 알게 된, 영혼의 교류라고 해야할지, 사람을 견딜 수 없이 좋아하게 되었어요. 영혼이 소리치고 있는걸요. 누구 하나와도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그런 존재인거에요. 이 마음을 알아주시겠어요?
염라대왕 :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다… 영혼이란 것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좋다, 그대들을 한번에 심판 해주도록 하지.
야스지로 : 감사합니다!
염라대왕 : 기뻐하기엔 아직 이르다…모두를 수정거울에 비추어, 가장 죄가 깊은 자의 형벌에 전원이 따르도록 하여라. 이걸로 어떠하냐.
야스지로 : ……
오스미 : 야스지로님, 저는 뱀을 죽인 죄가……
야스지로 : 아씨, 어디까지라도 함께에요… 여러분도요.
키로쿠 : 관둬요, 도련님. 저희들은 인생에서 죄 깊은 행동을 거듭해왔기 때문에 가장 중한 지옥에 가는 것도 각오하고 있어요. 하지만 도련님은 아니에요. 순정이 순정을 걸친 것 같은 분이시잖아요. 도련님까지 같이 가시는 건 안돼요!
야스지로 : 싫어
토쿠사부로 : 아직 지옥행이라고 결정된 게 아니잖아요. 여기는 야스지로씨에게 맡겨보지요.
야스지로 : 토쿠사부로씨, 고마워요……염라대왕님, 수정거울의 말씀대로 따를게요. 부탁드립니다.
염라대왕 : 좋다……수정거울에 비추어라!
음악과 함께 수정거울 안에서 천녀와 아수라가 등장하여, 노래한다.
두 사람 : 지옥극락 갈 곳은 어느 쪽
좌대신·선명이 징을 울리려고 할 때, 가난뱅이 신과 토쿠사부로가, 우대신·좌대신을 거울 앞으로 밀어내고, 토쿠사부로가 징을 울린다.
우대신·광명 : 염라 녀석, 정말 말도 안 되는 놈이야! 사람 부리는 건 거친데다 급료는 코딱지만큼 주고.
좌대신·선명 : 자기 혼자 맛있는 걸 처먹고, 우리들한텐 먹다 남은 찌꺼기만 주고 말야.
우대신·광명 : 여자를 밝혀서, 조금이라도 예쁜 여자를 보면 금방 첩으로 삼지.
좌대신·선명 : 염라 놈이 없으면 명도는 극락이다!
두 사람 : 염라는 멍청이야~
토쿠사부로가 징을 울리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우대신·좌대신.
두사람 : 저희가 뭔가…말했습니까?
염라대왕 : 두 사람을 아비지옥행에 처한다!
(*阿鼻地獄あびじごく아비지옥, 팔열지옥 중 가장 아래층. 無間地獄무간지옥 이라고도 한다)
두 사람 : 그럴수가…!
아수라 : 불쌍하구나… 아비지옥의 형기는 반 겁劫. 무한에 가까운 세월이다… 도깨비들아, 지옥으로 끌고가라!
도깨비들 : 예이!
아수라 : Naraka Naraka 몸을 불태우는 팔대지옥八代地獄
도깨비들에게끌려가는, 우대신과 좌대신.
천녀 : 자아, 남아있는 여러분들은 극락정토極樂淨土에 안내 해 드릴게요.
천녀 : sukhāvatī sukhāvatī 행복이 가득 찬 극락정토
염라대왕 : 기다려라! 수정거울이 결정한 것이기에, 흔쾌히 너희 모두를 극락으로 보내주겠다.
야스지로 : 감사합니다.
염라대왕 : 그러나, 가난뱅이 신이여!
가난뱅이 신 : 네에
염라대왕 : 거긴 망자들의 심판을 내리는 곳이다. 망자 인 척 하고 복의 신이 되려 하는 그 속셈, 용서하기 어렵구나. 그대는 지옥으로 보내어, 죽음의 신으로 삼겠다.
가난뱅이 신 : 주, 죽음의 신…(기절한다)
야스지로 : 염라대왕님, 빈쨩도 저희들의 친구입니다. 빈쨩이 복의 신이 되게 해주세요!
염라대왕 : 그렇다면, 그대 중에서 누군가 한명, 가난뱅이 신을 대신하여 지옥에 가거라. 그렇다면 가난뱅이 신이 복의 신이 되어도 좋다만. 어떻게 할 것이냐?
망설이는 일동중에서, 야스지로가 나서서,
야스지로 : 제가 빈쨩 대신 지옥에 가겠습니다.
가난뱅이 신 : 야스지로님!
야스지로 : 빈쨩, 꿈이 이뤄지는 거야. 훌륭한 복의 신이 되어줘.
가난뱅이 신 : 야스지로님…
오스미 : 염라대왕님, 저도 지옥에 가겠습니다!
야스지로 : 아씨!
오스미 : 부모와 자식간의 연은 1세, 부부의 연은 2세, 주종은 3세라고들 하지만, 저와 야스지로님은 5세, 10세…아니 영원히 함께에요.
(*親子は一世、夫婦は二世、主従は三世
부모 자식간의 연은 현세에 그치나, 부부는 전생과 현세, 혹은 내세의 2세에 걸친 인연이며, 주종관계는 전세 현세 내세에 걸친 것이라는 뜻. 봉건사회의 주종관계의 강한 결합을 나타내는 말)
야스지로 : 그런 말을 들으니 너무 기뻐요. ……그렇다면 다 같이 지옥에 가요.
염라대왕 : 그런 것은 승낙할 수 없다! 빨간 도깨비, 파란 도깨비여 두 사람을 갈라놓아라!
빨간 도깨비·파란 도깨비가 두 사람을 떨어뜨려 놓는다.
야스지로 : 아씨!
오스미 : 야스지로님!
염라대왕 : 약속대로, 두 사람 이외는 극락에 보내주마. 두 사람에게는, 이 염라대왕님의 무서움을 충분히 맛보게 해 줘야 겠어……끌고가거라!
엔딩에서, 염라대왕이 퇴장. 야스지로는 빨간 도깨비에게, 오스미는 파란 도깨비에게 끌려 사라진다.
축의불축의막이 닫히고, 천녀와 토쿠사부로 일행이 남겨진다.
천녀 : 자아, 극락에 안내해드리죠.
가난뱅이 신 : 이제 나도 복의 신이 될 수 있어!
토쿠사부로 : 기다려 봐… 저 두 사람은, 어떻게 되는거지?
키로쿠 : 그러게요… 빈쨩, 당신 혼자만 행복해지면 그걸로 된 거에요?
가난뱅이 신 : 그건…
토쿠사부로 : 지금은 저 두 사람을 구해내는걸 생각해보자.
잇파치 : 그렇지만 상대는 무서운 도깨비들이라굽쇼.
토쿠사부로 : 그래, 도깨비를 상대해야하지… 아아, 이럴 때 도깨비 퇴치로 유명한 모모타로라도 있었다면 말야.
(*桃太郎ももたろう모모타로. 일본의 전래동화. 복숭아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개 원숭이 꿩을 거느리고 도깨비 사냥을 하는 이야기)
아코기 : 있어.
전원 : 엥?
아코기 : 모모타로도, 오오에산의 오니퇴치로 유명한 미나모토노 라이코우씨도 사천왕 분들도… 명도에는 역사상의 영웅호걸들의 모여있다구.
(*源頼光みなもとのらいこう, 미나모토노 라이코우, 미나모토노 요리미츠. 헤이안 시대 중기의 무장. 교토의 大江山오오에산에서 도깨비를 토벌 한 것으로 유명. 사천왕은 그의 부하들)
토쿠사부로 : 그거 좋구만. 이래야 제대로 된 명도 여행이지. 모두들, 생각 나는대로 영웅 호걸들을 전부 모집하는 거야. 염라대왕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자!
전원 : 예이!
엔딩에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제 13장
삼도천의 강변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에게 쫓기며, 야스지로가 등장한다.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얼른얼른 걸어가지 못할까!
야스지로 : 저어, 좀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건가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앗하하하… 도깨비를 하면서, 가장 기쁜 순간이 왔구나…이 쇠몽둥이로 네놈을 쳐살리는거지!
야스지로 : 쳐살려요? 또 뭔말인지 모를 말이… 쳐죽인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사바에서는 그렇게 말하나본데, 명도에 있는건 죽은 인간, 두 번은 죽일 수 없으니 쳐살린다고 말하는 거다.
야스지로 :……그, 그래서, 아씨는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너도 나쁜 여자랑 연을 맺었구나.
야스지로 : 나쁜 여자!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그럼!
야스지로 : 말도 안돼요. 아씨는 삼국 제일의, 아니 삼천세계 제일의, 십만억토 제일의 여자라구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그게 안 좋았던 거라구… 염라대왕님은 어마어마한 색골이라, 첩으로 삼았던 탈의 할멈에게도 질려서, 새로운 첩을 찾고 계셨거든… 거기에 나타난 게 그 여자라는 거지.
야스지로 : 과연, 염라대왕님도 눈이 높으시군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그럼그럼.
야스지로 : 아니, 아니지. 아씨는 저의 아내에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그러니까, 네놈이 방해꾼인거야. 여기에서 쳐살려서, 오스미를 대왕님의 첩으로 내놓는 거지. 지금쯤 탈의 할멈의 저택에 끌려갔을 걸…자아, 각오해라!
(*奪衣婆탈의파, 탈의 할멈. 삼도천 부근에서 망자의 기모노를 뺏어간다고 전해지는 도깨비 할멈)
야스지로 : 아아, 알겠어요. 쳐살게되는 건 각오하고 있어요. 하고 있는데, 그 쇠몽둥이로 쳐살리는 것 만은 부디 봐주세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봐달라고 해도, 내 임무라서 말야…… 뭐, 지옥도 돈이 최고긴 한데.……뭐 좀 갖고 있냐?
야스지로 : 돈 말인가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오우 그럼.
야스지로 : 돈은 없지만……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아아!(곤봉을 번쩍 치켜든다)
야스지로 : 눈감아 주신다면, 이 증서를 드릴게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증서라고?
야스지로 : (천주머니에서 증서를 꺼내며) 이건 전부 돈을 빌린 녀석들이 명도에 있어서, 훌륭하게도 돈을 거둘 수 있는 증서들이에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받아들고, 기뻐하며) 꽤 있구만…좋아, 쇠몽둥이로 쳐살리는 건 넘어가주도록 하겠지만, 그 여자에게 미련이 남아 명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으면 그때엔 용서하지 않을 테다.
야스지로 : 그건 괜찮아요. 삼도천에 뛰어들어서 사바세계로 돌아갈 거니까.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그럼 후딱 사바로 돌아가라.
야스지로 : 네에. 저어, 삼도천은 어느 쪽이였죠?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왼쪽으로 가서, 쭉 막다른 곳까지 가면, 삼도천의 가장 깊은 곳이 있어. 거기가 사바로 나가는 지름길이다. 자 가봐라
야스지로 : 그 전에, 탈의 할멈의 저택은 어느 쪽에 있나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그걸 알아서 뭘 할 건데?
야스지로 : 한번은 부부의 언약을 나눈 여자에요. 멀리에서라도 이별의 인사를 하고싶어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동정해서 운다) 좋아, 저쪽이야.
야스지로 : 감사합니다…아씨, 이제 안녕이에요~~~~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이제 됐지. 후딱 가버려!
야스지로 : 안녕이에요~~~~
도깨비에게 위협당하여 떠나가는 야스지로.
빨간 도깨비가 증서를 손에 들고 기쁜 듯이 퇴장한 곳에, 야스지로가 되돌아온다.
야스지로 : 그건 그렇고 무서운 도깨비네. 쇠몽둥이를 휘두르고…그렇지만, 도깨비 따위를 두려워 할 이 야스지로가 아니야. 아씨, 반드시 구하러 갈게요. 기다려줘요!
엔딩에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진다.
제 14장
탈의 할멈의 저택
무대, 탈의 할멈·엔야 저택의 정원.
나무에 결박당해, 파란 도깨비들에게 감시를 받으며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오스미.
탈의 할멈 엔야가 등장하여 말을 건다.
엔야 : 아직도 묵묵하게 버티고 있는 거야?
파란 도깨비 아오지로 : 엔야님! 고집이 센 계집애라 끄덕도 안해요.
엔야 : 내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받아들이게 해 보이겠어, 너희들은 저쪽에서 술이라도 마시도록.
파란 도깨비 아오지로 : 감사합니다… (오스미에게)탈의 할멈으로 악명 높았던 엔야님이시다, 솔직하게 따르는 게 좋을 거야. 그럼, 부탁드립니다.
퇴장하는 파란 도깨비들.
오스미 : 할머니
엔야 : 할멈이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나는 이렇게 보여도 업계에선 젊은 축이라고.
오스미 : 할머니, 나는 야스지로님이라는 언약을 나눈 남편이 있어요.
엔야 : 무슨 말을 해대는건지. 너는 남편이 없어. 네놈들은 명도에 와서, 맘대로 부부의 연을 맺은거잖아.
오스미 : 야스지로님은, 야스지로님은 어떻게 됐나요?
엔야 : 빨간 도깨비들에게 쇠몽둥이로 쳐살려져서, 지금쯤은 원령이 되어 사바에 돌아가 있을걸. 하하하
오스미 : 야스지로님…
야스지로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오스미.
엔야 : 이걸로 단념할 수 있겠지. 알겠어? 염라대왕님의 마음에 기대도록 해.
오스미 : ……할머니는, 남자를 좋아한 적이 없나요?
엔야 :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
오스미 : 그렇담 이해 해 주실 수 있잖아요, 우리들의 마음을…
엔야 : 모르겠는걸. 소꿉장난 같은 사랑이야기 따위… 우리들의 사랑은 격렬하게 사랑한 나머지, 나라를 멸망시켜버렸으니까.
오스미 : 나라를 멸망시켰어요?
엔야 : 우리의 힘은 산을 뽑고 우리의 기백은 세상을 덮는데, 시대가 불리하여 애마는 나아가려하지 아니하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으리. yú xī yú xī nài ruò hé.
(*항우項羽가 우미인虞美人에게 남긴 해하가垓下歌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騅不逝 騅不逝兮可柰何 虞兮虞兮柰若何
엔야가 마지막 문장을 중국어로 말함)
오스미 : 우희여, 우희여, 너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엔야 : 긴 전쟁으로 향하는 그 사람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서, 나는 스스로 이쪽의 세계로 온 거야.
오스미 : 할머니……혹시 우미인인거에요!?
엔야 : 그렇게 불렸던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잊어버렸어. 어차피 이천년도 더 전의 이야기니까… 이걸로 알겠지, 너의 마음 같은 건 열병 같은 거야. 삼 일만 지나도 사라져서 없어질 걸… 아무리 해도 싫다고 한다면, 그래도 상관없어. 이대로 나무에 묶인 채 밤을 맞이해봐. 밤이 되면 지옥에서 사람을 먹는 새가 나타나서, 그 예쁜 몸을 쪼아 먹어 줄 테니까. 하하하
밉살맞게 퇴장하는 엔야.
식인조의 울음소리가 기분나쁘게 울린다.
오스미 : 아아,야스지로님…
야스지로 : (목소리) 아씨
목소리와 함께, 야스지로가 숨어들어온다.
오스미 : 야스지로님!
야스지로 : 쉿! 담장 너머에서 빠짐없이 이야기를 들었어요. (줄을 풀면서) 꾸물거리면 식인조의 먹이가 될 거에요.
오스미 : 야스지로님!
야스지로 : 이렇게 된 거 도망 칠 데까지 도망쳐 봐요!
오스미가 묶여있던 줄을 푸는, 야스지로.
엔야가 나타난다.
엔야 : 젊은이들은 터무니없는 짓을 하는구나.
오스미 : 할머니! 할머니, 떠올려보세요. 항우님과 처음 만났던 때를.
엔야 : 무, 무슨 말을 하는거야.
오스미 : 사람을 사랑하는 데엔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격렬한 것도 조용한 것도 없어요… 저희들은 막 시작하려는 차에 이 세계에 와 버렸어요. 하지만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요. 우리들은 여기에서 사랑을 키울 수밖에 없어요!
엔야 : 어리구나…그래선 염라대왕님의 첩이란 자리를 감당할 수 없어… 어떻게 되든 좋다면, 한번 도망쳐 봐.
오스미 : 할머니!
엔야 : 자아, 가보렴.
야스지로 :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감사인사를 드릴게요. 자아, 아씨
야스지로, 오스미를 데리고 도망치려고 한다.
엔야 : 아, 나를 묶어두고 가렴…뻔히 보고 놓쳤다고 하면, 나까지 혼날 테니까.
야스지로 : 감사합니다
엔야를 나무에 묶는 야스지로.
오스미 : 할머니, 고마워요.
엔야 : 행복해지렴.
야스지로 : 감사합니다.
엔야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떠나는 야스지로와 오스미.
염라대왕이 파란 도깨비들을 끌고 등장한다.
염라대왕 : 엔야……어떻게 된 것이냐.
엔야 : 야스지로인가 뭔가 하는 남자가 기습해 와서…오스미를 데려갔습니다.
파란 도깨비 아오지로 : 그래서, 어느 쪽으로 도망쳤나요?
엔야 : (반대 방향을 가르키며) 저쪽이야. 빨리 쫓아가 봐
파란 도깨비 아오지로 : 어떻게 해서든지 잡아내라!
파란 도깨비들 : 예이!
염라대왕 : 잠깐!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녀석들이 향할 곳은 삼도천 뿐이다. 명도의 도깨비들을 모두 모아라, 그리고 삼도천에서 얄미운 야스지로를, 쳐살려라!
파란 도깨비들 : 예이!
염라대왕을 따라 퇴장하는 일동.
나무에 묶인 엔야, 조용하게 노래부른다.
엔야 : 붉은 꽃잎, 연정의 빛깔.
엔딩에서 다음 장면으로 계속된다.
제 15장
승패가 엇갈리는 유교도有橋渡
(삼도천에 있다는, 착한 사람만 건널 수 있다는 금은칠보로 된 다리)
무대, 커튼 앞.
도깨비들을 거느린 염라대왕이 시모테 하나미치(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 왼쪽)에서 등장.
토쿠사부로가 도깨비 퇴치로 유명한 미나모토노 라이코우와 사천왕(와타나베노 츠나, 사카타노 킨토키, 우스이 사다미츠, 우라베노 스에타케), 모모타로를 이끌고 카미테 하나미치(객석에서 봤을 때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한다.
양측 군대 : 삼도천이 피로 물든다
승패가 엇갈리는 큰 전쟁
염라대왕 : 명도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어중이 떠중이들을 쓰러뜨려라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정의의 이름으로 모여서
파란 도깨비 아오지로 : 도깨비의 프라이드를 지켜내라
토쿠사부로 : 순수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얄미운 도깨비들을 쓰러뜨려라
미나모토노 라이코우 : 도깨비 퇴치는 식은 죽 먹기
모모타로 : 개, 꿩, 원숭이와 수수경단
(*모모타로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 개 꿩 원숭이를 동료로 삼기 위해 할머니가 만들어준 수수경단을 주었다)
양측 군대 : 자웅을 겨루는 큰 전쟁
가자! 가자! 가자! 가자!
커튼이 열리자, 무대, 중앙에 주홍색의 유교도.
다리 위에는 야스지로와 오스미, 양 군이 본 무대로 행군한다.
코러스 : 삼도천이 피로 물든다
승패가 엇갈리는 큰 전쟁
동쪽의 코러스 : 동쪽의 군세를 이끄는 것은 상사병의 야스지로
도깨비 퇴치로 이름을 날린 영웅호걸이 발을 구른다
서쪽의 코러스 : 대적하는 서쪽의 대군은 말하지 않아도 알 법한 염라대왕님
빨간 도깨비 파란 도깨비 모두 이끌고 천하 무적의 전쟁 준비
토오요세(*遠寄せ가부키에서 쓰이는 음악의 일종. 대 태고와 징을 이용하여 멀리까지 뻗은 군세를 표현한다)가 울려 퍼진다.
염라대왕 : 빨간 도깨비, 파란 도깨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놈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쳐살려내라!
도깨비들 : 예이!
야스지로 : 이건 사랑의 싸움이에요. 사랑이 무엇보다도 강하단 것을 보여줍시다!
영웅호걸들 : 오오!
음악과 함께 격렬한 싸움.
코러스 : 도깨비와 호걸들이 뒤섞여 끝도 없이 계속되는 큰 싸움
도깨비에게 대적하는, 모모타로.
코러스 : 오오― 오오―… 오오― 오오―…
도깨비에게 대적하는, 라이코우와 사천왕.
코러스 : 도깨비 퇴치로 이름을 날린 그 대단한 미나모토노 라이코우도
쓰러뜨려도 쓰러뜨려도 되살아나는 좀비 도깨비에게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오오― 오오―…오오― 오오―…
도깨비들이 야스지로와 오스미를 강제로 갈라놓는다.
코러스 : 야스지로와 오스미를 갈라놓아
가련하고 순수한 사랑 명도에서 흩어지는가
절의 종소리와 함께, 일동 멈춘다.
야스지로 : 아씨, 잊지말아주세요. 이렇게 두 사람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도 오늘 밤이 마지막, 내년의 이번 달, 이 밤의 이 달을 반드시 제 눈물로 흐리게 해 보일게요…… 달이 흐리면, 아씨, 제가 어딘가에서, 오늘 밤처럼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주세요.
돌연, 음악이 멈추고, 도깨비들이 배를 감싸고 웃기 시작한다.
야스지로 : 뭐, 뭐야, 왜 그래요?
오스미 : 야스지로씨가, 내년 이야기를 하니까 도깨비들이 웃기 시작했어요.
야스지로 : 내년 이야기를 하면 도깨비가 웃는다… 도깨비의 약점은 그거야. 모두들, 내년의 이야기를 하는거야!
(*来年の事を言えば鬼が笑う 내년 이야기를 하면 도깨비가 웃는다 라는 일본 속담. 미래의 일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 해 봐야 소용없다 는 뜻.)
토쿠사부로 : 내년은 내년은
키로쿠 : 멧돼지해야!
(*일본은 돼지해가 아니라 멧돼지해라고 한다)
도깨비들 : 하하하하 하하하하 이거 미치겠군
가난뱅이 신: 내년은 내년은
하츠네 : 내년은 내년이야!
도깨비들 : 하하하하 하하하하 이거 미치겠군
염라대왕 : 멍청한 놈들!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큰 소리를 내며 싸우는거다!
그 이야기에, 목소리를 높이는 도깨비들.
코러스 : 궁지에 몰린 야스지로
기사회생의 공격은 천수관음千手觀音 필살검必殺劍
야스지로를 선두로 토쿠사부로 일행이 뒤로 빠져, 천수관음의 포즈를 한다.
쓰러지는 도깨비들…….
염라대왕 : 내가 직접 심판하겠다!
염라대왕의 포효에 도망치는 야스지로 일행.
위기일발의 야스지로와 오스미, 염라대왕에게 쫓겨 삼도천에 떨어진다. 빨간 도깨비, 파란 도깨비, 염라대왕도 뒤를 쫓아 뛰어든다.
코러스 : 적도 동료도 삼도천에 떨어졌다네 갈 곳은 어디인가
조명, 급격하게 어두워지며, 토쿠사부로 한 명에게 포인트를 맞춘다.
토쿠사부로 : 순애 삼매경 정직 삼매경
마음 가는대로 죽음까지 맞이한 자네를 잊지 않아
잘 가게 친구여 마음의 친구여
화면이 어두워지고, 다음 장면으로 계속된다.
제 16장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무대, 야스지로의 장례식이 한창인 와중.
부친·킨베에와 모친·오토세가 얌전히 보쿠넨 스님의 독경을 듣고 있다.
그 때, 돌연 관짝이 흔들린다.
킨베에 : 뭐냐, 뭐야!
보쿠넨 : 아직 성불하지 못했나 봅니다. 좀 더 큰 소리로 경을 외면…
관의 흔들림은, 독경의 소리와 비례하여 점점 더 커져서, 음악과 함께 관짝이 부서지고 야스지로가 뛰쳐나온다.
야스지로 : 어라? 여긴 어디지? 앗, 아버지!
킨베에 : 유, 유령이다!
도망치려 우왕좌왕하는 킨베에 일동.
오토세 : 야스지로!
야스지로 : 어머니!
오토세 : 야스지로, 다리가 있어! 너, 되살아난 거니?
야스지로 : 그런 것 같아요. (심호흡하며) 사바세계의 공기는 좋네요.
그 때, 오스미가 뛰어들어온다.
오스미 : 야스지로님~!
야스지로 : 아씨, 아씨도 되살아난 건가요!
오스미 : 네에
오토세 : 아가씨는…?
오스미 : 처음 뵙겠습니다. 오스미라고 합니다.
오토세 : [쇼게츠도]의 아가씨 맞지요?
오스미 : 네.
야스지로 : 저 세상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거든요.
킨베에 : 저 세상? 부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 때, 땅울림 같은 소리와 함께 관 안에서 염라대왕과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파란 도깨비 아오지로가 뛰어나온다.
염라대왕 : 염라대왕한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거냐 하하하하
그 모습에 또 다시 소란스러워진다.
염라대왕과 도깨비들에 둘러싸여 모든 것을 포기한 야스지로와 오스미.
그 때, 오토세가 끼어들어서.
오토세 : 소중한 내 아들한테, 뭔 짓을 하는거야!
오토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염라대왕의 뺨을 때린다.
염라대왕, 화가 머리끝까지 난 표정으로 오토세에게, 조금씩 다가가더니, 다음 순간
염라대왕 : 우와앙―!
어린아이처럼 울부짖는 염라대왕.
빨간 도깨비 아카타로 : 저 여자가, 염라대왕님을 괴롭혔어……
파란 도깨비 아오지로 : 귀신, 귀신이다, 귀신할멈이다!
빨간 도깨비와 파란 도깨비도 몸을 떨며 울기 시작한다.
야스지로 : 그렇구나! 명도에서는 천하무적의 염라대왕님이어도, 사바세계에서는 그 위세가 없어져버리는 거야.
오스미 : 그렇다면, 괴롭히려거든 지금이네요… 당신들, 각오해두라고!
야스지로 : 그만두세요. 지금부터 우리 집 하인으로 부려먹으면 되잖아요.
오스미 : 그렇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괴롭힐 수 있겠네요!
염라대왕 : 지옥이다, 사바세계는 지옥이야!
야스지로 : 명도도 좋지만, 사바가 제일 좋네요… 아씨, 이제부터 우리 행복해져요.
오스미 : 네, 야스지로님.
킨베에 : 뭐가 어떻게 된 거냐?
야스지로 : 아버지는 가만히 계세요.
킨베에 : 그 그래
야스지로 : 살아있기만 하면, 어떤 고생도 극복해 낼 수 있어. 한번 죽는 셈 치고 해봐요. 이 세상은 극락, 살아있다는 건 감사한 거야!
야스지로를 중심으로 축하 연회가 펼쳐진다.
야스지로 : 이 세상에 태어난 목숨이 곧 보물
물려받은 보물을 감사히 여기고
고민이 있다 하여도 그저 살아남아서
이 세상의 기쁨을 노래하시게
사바 전원 :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무대는 전환하여, 저 세상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토쿠사부로 : 죽는다 하여도 영혼은 남아
저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영혼 뿐
추녀추남 상관없이 맑은 영혼이 구원 받네
천상계 전원 :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야스지로 : 저 세상과 이 세상 마음으로 맺는
몸은 떨어져 있어도 인연은 끊기지 않네
사라지지 않는 인연은 언제 언제까지라도
서로의 행복에 손을 모으고
사바 전원 :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천상계 전원 :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전원 : 저 세상과 이 세상 마음으로 맺는
몸은 떨어져 있어도 인연은 끊기지 않네
사라지지 않는 인연은 언제 언제까지라도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얼씨구절씨구 감사합니다
얼씨구절씨구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전원이 환희의 노래로, 삶과 죽음을 칭송하는 중, 무대의 막이 내려온다.
경쇠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불교에서 경을 욀 때 쳐서 소리를 내는 놋으로 만든 불전 기구)